항덕의 눈길을 잡아끈 시계
해리엇 워치스를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입니다. 페이스북 광고를 보고 나서인데요. 항우연(KARI)과 콜라보한 시계라는 점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오메가와 스와치가 콜라보한 문스와치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조종사 면장도 있고, 항공대까지 나오고, 항공사도 다녔던 항덕인 제가 항우연과 콜라보한 해리엇 워치스를 만난 건 단순한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해리엇 워치스는 누리호 발사를 기념하는 한정판 시계를 제작해, 저 같은 시덕이 꼭 갖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아름다운 패키지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시계를 저렇게 장식할 수 있는 스탠드까지 준다니, 이거 반칙 아닌가요?
상세 페이지를 볼수록 시덕X항덕인 저의 마음은 도대체 이 브랜드는 뭐지? 라는 질문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
시계 덕후
시계를 좋아합니다. 정확히는 롤렉스, 오메가와 같은 스위스제 시계로 대변되는 기계식 손목시계요. 실제로 IWC, 튜더, 티쏘 등의 시계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시계덕후답게 쿼츠 시계도 많습니다.)
건전지가 없어도,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무게추가 돌면서 그 힘으로 시계가 간다니, 기계식 시계는 참 로맨틱하지 않나요? 기계식 시계는 꾸준히 관리만 하면 100년도 갈 수 있습니다.
▲콕핏에서 최애 IWC 스핏파이어와 함께
시계를 좋아하다보니, 페이스북이 종종 시계 광고를 보여줍니다. 대부분 중국산 무브와 부속을 쓰고 조립만 유럽에서 한 다음 겉으로만 이태리제, 프랑스제, 스위스제인 척하는 마이크로 브랜드들이 대부분입니다. 디자인은 이미 유명한 제품들을 카피하고요.
물론 시계 디자인에서 오리지널리티를 찾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관심이 없는 사람이 보기엔 다 똑같아 보이거든요. 그래서 온라인에는 사회 초년생이 롤렉스 시계 구입하는 과정이라는 웃지 못할 유머 자료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좌측 카시오 듀로, 우측 롤렉스 서브마리너, 시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2개가 다른 브랜드라는 것을 인지하기 어렵죠.
10만 원짜리 카시오 듀로가 1,000만 원짜리 서브마리너가 되는 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카시오 듀로 10만 원 → 세이코 솔라 60만 원 → 티쏘 씨스타 80만 원 → 해밀턴 카키네이비 100만 원 → 오리스 애커스 200만 원 → 태그호이어 아쿠아레이서 300만 원 → 오메가 씨마스터 600만 원 → 롤렉스 서브마리너 1,000만 원
매우 흥미롭죠. 이렇게 시계의 디자인만으로 제품을 차별화 하기가 어렵다 보니, 심지어 기계식 시계의 본고장 스위스에서도 몇몇 선도적인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서로를 열심히 공부해 카피 제품을 내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스토리를 파는 시계, 해리엇 워치스
이런 상황에서 해리엇 워치스는 완전히 다른 행보를 가져갑니다. 유명한 브랜드의 디자인을 차용해 중국산 부속을 조립한 다음 ”우리는 중국 시계가 아니야“라고 말하기보다는 자랑스럽게 한국 시계 부속을 사용해 한국에서 제조하고 MADE IN KOREA를 새겨넣는 길을 가기로 한 것이죠.
제조 과정에서만 한국을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품 라인업, 네이밍, 심지어 로고에서도 한국적인 것이 묻어나옵니다.
해시계에서 영향을 받은 시계 ‘일구’, 성산대교를 오마쥬한 ‘성산’, 가양대교를 오마쥬한 여성라인 ‘가양’, 서해대교를 오마쥬한 ‘서해’, 2018년 4월 남북 정상이 경호원, 보좌관 없이 도보다리에서 만난 점에서 착안해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 만든 ‘도보’ 그리고 서두에 언급한 항우연 콜라보 KARI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과 밀접한 모티브로 시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시계 라인업에 대한 소개와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는 등 소통에도 적극적입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만든 '도보'라인은 500개 한정판이었고, 전량 품절.
해리엇은 어떤 사람이 만들고 있길래 이런 시도를 하는 걸까요? 해리엇을 만드는 홍성조 대표는 대한민국의 패피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시계인 대니얼웰링턴(DW)을 한국에 최초로 들여온 분이라고 합니다.
파슨스에서 패션마케팅을 전공하셨는데, 수많은 시계 브랜드가 실제로는 중국산 부속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유럽산인 것처럼 브랜딩을 하는 것을 보고, MADE IN KOREA를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브랜드로 해리엇 창업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리엇 워치스 로고는 독립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해요.
▲해리엇 - 대한민국을 기억하다.
진정성은 결국 승리한다.
시계 산업은 한국에서는 천천히 죽어가는 사양산업입니다. 과거 한국의 시계 기술이 스위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높고, 시장도 컸던 것이 맞지만 이제는 고가 시계는 스위스로, 중저가 시계는 중국으로 판도가 넘어가 버린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해리엇 워치스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산 시계의 길은 이제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나마 해리엇이 시작할 때 몇 개 없었던 부품 공장들은 거의 다 문을 닫았고, 조립공장마저도 굉장히 열악한 상황입니다. 어쩌면 자랑스럽게 시계에 새겨넣었던 MADE IN KOREA는 이제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해리엇 워치스는 “대한민국을 기억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지켜나가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해리엇은 앞으로 프로젝트성 한정판 시계만을 소개하려 합니다. 새로운 시계는 일년에 최대 2번을 소개하는 걸 우선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해리엇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진정성”이 아닐까 합니다.
시계 브랜드에 무슨 진정성? 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해리엇이 걸어온 길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우연히 시계 제조업에서 20년 넘게 종사한 전문가분을 만나 브랜드를 창업한 이야기부터, 한국의 다양한 다리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시계, 그리고 한 번의 거절에 굴하지 않고 노력해 결국 성사시킨 항우연과의 콜라보레이션까지, 단순히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기억하다”라는 가치를 위해 달려온 해리엇의 모든 발자취가 진정성 있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런 진정성이 저에게 와 닿았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열심히 포스팅을 작성해 해리엇이라는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것이구요.
결국 시간이 걸릴 뿐, 진정성은 승리한다고 믿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순간과 함께할 해리엇의 행보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항우연 콜라보 제품 한정판 카리(KARI)는 여기서 살 수 있습니다. 저도 하나 사고싶군요..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오메가 문워치에 필적할 헤리티지를 갖춘 시계로, 시계를 잘 모르는 사람에겐 “이 시계는 이런 이야기를 가진 시계야” 라고 아이스 브레이킹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 시계로 추천하고 싶은 브랜드입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