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배우고 있다. 1월 말, 뒤늦은 새해 결심이었는데, 꼴랑 두 번 다녀온 뒤로 이석증으로 2주를 쉬고 그저께부터 다시 스포츠센터에 나가고 있다.
머리가 많이 흔들리면 이석증 재발 우려가 있다고 해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많이 고생 한다고 했다. 최대한 살살, 부담 안 되는 선에서 수영하겠노라 마음먹고 센터로 나온 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강사는 왜 이렇게 오랜만에 나왔냐는 인사로 수업을 시작했다. 매주 월, 수, 금 주당 3회씩 수업인데, 나는 6회나 수업을 빼먹은, 진도가 가장 늦은 수강생이 됐다.
그전 수업에서 아무리 열심히 발장구를 쳐도 생각한 것만큼 몸이 나가질 않아서 수영이 나랑 안맞나라는 생각까지 하던 차였다.
근데 세 번째 수업인 그제부터 몸에 힘이 빠지고 추진력이 붙기 시작했다. 키판 없이 차렷 자세로 한 호흡씩 발만 차면서 레인을 왕복해보라는 강사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는데, 발장구의 세기와 추진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하려는 것 같았다.
힘보다 리듬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훨씬 더 적은 힘으로 더 빠르고 더 멀리 이동할 수 있었다. 이 변화를 눈치챘는지, 강사는 곧바로 스크로크를 같이해보라고 지시했다. 첫 시간과 둘째 시간에 지겹도록 연습했던 동작이었다. “스크로크 두 번 하고 네 번 발장구를 차보세요.”
발장구만 할 때보다 훨씬 더 빨리 몸이 앞으로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야 진짜 수영을 하는 거 같네“ 기쁜 마음에 수업이 끝나고 혼자 남아 두 바퀴나 더 연습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내겐 네 번째 수업인 오늘, 바로 오른쪽 호흡을 하며 연속동작을 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지금 내가 초보반에서 가장 잘한다는 말과 함께. 모든 수강생에게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자신감이 붙어있던 상태였다.
”스트로크 한 번에 네 번씩 발장구를 하고, 호흡은 스트로크 세 번 마다 한 번씩 해보세요. 출발!“ 한 번 젓고 네 번 차고 호흡은 세 번 젓고 한 번씩. 머릿속에 명령어를 입력하고 물질을 시작했다. 발장구에 드는 힘은 더 적었고, 호흡이 딸려서 중간에 멈추게 하던 부분도 개선됐다.
첫날 키판 잡고 레인 도는 연습 때 가장 느리던 내가 가장 빨리 완성된 형태의 자유영을 하는 순간이었다.
강사가 쪽집게 강사였는지, 내가 수영을 잘한 건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확실한 건 운동의 경우 힘을 빼면 뭐든 더 잘되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 스카이다이빙, 탁구, 볼링, 골프 모두 힘이 빠져야 올바른 자세로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켜켜이 쌓여야 실력이 된다.
운동에서는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체감했지만, 정작 내 삶에서는 그런 배움을 적용하지 못해온 것 같다. 대학 입학 이후로 누구에게도 손 벌리지 않고 10년 넘게 악으로, 깡으로 치열하게 살았다. 딱히 가진 건 없는 데 원하는 건 많았기 때문이다. 딱히 힘들단 생각은 안했다. “내게 필요한 건 시간 뿐“이란걸 진심으로 믿고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또 그때 나름의 긴장감 속에서 종종 힘을 빼고 살았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많은 시간을 힘 빡 주고 살아서 그런가? 허리 디스크에, 이석증에, 조금 무리하면 오른쪽 발목도 만성적으로 아픈 상황이 됐다. 앞으로 살날이 50년은 더 될 텐데 괜찮은 건가 싶다.
그래서 앞으로는 수영하듯 삶을 살고자 한다. 안간힘 쓸 필요 없이, 힘 쭉 빼고. 슬렁슬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고의 효율을 위한 최적의 움직임으로, 내 리듬에 맞춰.
스트로크 한 번에 네 번씩 발장구치며 첫 자유영을 하던 순간을 항상 기억하길 기리며.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