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해서 써보죠?
이번 오글클 신기수는 조금 색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참가자분들이 직접 주제를 제시하고, 나도 그들과 함께 글을 써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주 주제는 벌써 오글클에 5개 기수 이상 참가한 태윤님이 "나에게 큰 감동을 준 영화, 무엇인가요?"를 제시했다. 이 전주에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뤘기에(누가 제시했을지 맞춰보시길.. 맞추면 50원!) 비교적 가벼운 주제를 써보자는 취지였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스타워즈, 트루먼 쇼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 등.
영화는 확실히 다양한 취향을 커버할 수 있고 누구나 즐기는 문화이기에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거대한 체스판
지금 읽고 있는 책이다.
냉전 이후 미국이 세계 1등 국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추구해야 할 전략을 소개하는 책인데, 책을 쓴 저자의 이력이 아주 흥미롭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폴란드 출신의 미국 정치학자이자 전략가로, 현대 민주당의 자유주의적 매파 정책 기조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 세계를 거대한 체스판으로 보고, 체스판의 그 중심인 유라시아를 전략적으로 잘 관리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1997년 출간된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정도로 순도 높은 통찰력이 담겨있다.
우크라이나는 유라시아 체스판 위에 새로이 형성된 공간으로서 지정학적 추축이라고 할 만하다. 독립 국가로서 우크라이나의 존재 자체가 러시아 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없이 유라시아의 제국이 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없이도 러시아가 제국의 지위를 노릴 수는 있지만 전적으로 아시아적인 제국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거대한 체스판
우크라이나에 대한 이런 내용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유를 아주 잘 설명해 준다.
아직 1/3정도 밖에 읽지 못했지만, 큰 가르침과 삶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책이 될 거라 생각한다.
뜬금없이 출간한 지 20년도 더 된 미국 대외 정책 관련 책이 내 삶에 무슨 영향을 미치느냐고?
나는 자본시장에 관심이 많으니 순수히 자본시장 관점에서 설명을 해보자.
대만/중국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
동북아 패권 갈등(한중일)
러시아/미국 갈등
중국/미국 반도체 및 AI 패권 갈등
모두 전 세계 증시에 큰 영향을 주고, 한국 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들이다.
특히 미국이 유라시아라는 체스판을 잘 통제할 수 있다면 미국의 세계 1등적 지위(Global supremacy)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 종합주가지수인 S&P에 투자하고 혁신을 가장 빠르게 드라이브하는 미국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유망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국이 계속 해먹을 수 있다면, 미국 회사 PER이 아무리 높아도 아직도 싸다는 얘기다. 앞으로 계속 클테니!)
그리고 최근의 반도체 및 AI 전쟁 양상을 보면 미국이 중국을 크게 앞서 나가는 것으로 보이고... 미국 패권이 내 자산 총량과 큰 관련이 있을 수 있으니 얼마나 큰 영향인가?
영화 덩케르크와 덩케르크 철수 작전
2017년에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제목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 지역에서 있었던 동명의 영국/프랑스군 철수 작전을 모티브로 한다.
당시 아이맥스로 이 영화를 봤다면 2차 세계대전 당시 덩케르크에 있었다고 해도 된다는 농담이 돌 정도로 전쟁 씬을 잘 묘사해 냈다는 평을 받은 영화이다.
전쟁사에 따르면, 이때 덩케르크에서 성공적으로 구출해 내서 영국군과 연합군의 사기가 오르고, 이때 구출된 군인들이 대거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다시 참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연합군의 승리에 큰 기여를 했으니, 결정적으로 덩케르크 구출 작전이 제 2차 세계대전에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역사적 사실과 별개로, 시간과 영상이라는 영화적 요소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동명 영화를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봤다.
그의 전작 인셉션에서 다양한 시간의 축을 사용해서 복잡한 플롯을 구성한것 처럼 덩케르크에서도 3개의 시간 축을 사용해 이야기가 전개 된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해석을 곁들이니 아주 대단한 능력을 가진 감독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느껴진다.
2차 세계 대전은 끝, 거대한 체스판은 시작
전쟁 전 유럽은 세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서유럽 국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이들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끝은 유럽의 종말을 가져왔다. 전쟁의 결과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파괴되고 경제적 기반을 잃었다. 미국은 전쟁 이후 마셜 플랜 통해 유럽의 재건을 지원하며 세계 경제에서의 리더십을 확립했고,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기틀을 잡았다.
반면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도 연대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자유 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은 총성 없는 전쟁, 냉전의 시대로 세계 역사를 이끌어 갔다.
자연스럽게 냉전 체제 하에서 양측의 대표인 미국과 소련이 새로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됐다. 냉전 구도는 전 세계에 걸친 정치적 긴장과 군비 경쟁을 초래했으며, 이후 몇십 년 동안 국제 정치의 주요한 테마로 작용했다.
하지만 창의성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 경제적 결실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자유 민주주의 진영이 경제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지금의 세계 질서가 정립됐다.
그리고 미국은 자국의 세계 1등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유라시아의 다양한 국가들을 체스말로 삼아 거대한 체스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체스판 위의 말: 한국
'거대한 체스판'의 한국어 번역가인 김명섭 교수는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을 접했을 때의 두려움과 착잡함을 드러냈다.
'체스판 위의 말들' 입장에서 이 책은 거인의 냉혹한 시선에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드는 묵시록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더욱이 유라시아의 한 귀퉁이에 있는 나라로 다뤄지는 한국의 지식인으로서 이 책을 읽는 심정은 매우 착잡한 것이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거대한 체스판
나 또한 같은 감정을 느낀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국제 정세 관련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생각을 단단히 고쳐먹으시길.
신년에 소주값 오르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내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가 바로 미국이 패권국가로써 계속 군림하느냐 마느냐이니까.
미국이 과연 효과적으로 유라시아를 통제 혹은 관리해서 Global supremacy를 지켜낼 수 있을까?
미국의 유라시아 전략 관점에서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무엇이 있을까?
나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미국의 국익과 한국의 소시민인 나의 이익이 합치될 수 있을까?
"역사란 무언인가"를 쓴 E.H. 카는 그의 저서에서 역사를 이렇게 정의했다.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대목이 아주 인상적이다. 내가 현재에 있더라도, 과거의 역사와 지속적으로 소통해서 새로운 관점과 의사결정 기준을 찾아 나가야 한다.
좋아하는 영화 덩케르크와 역사적 사건인 덩케르크 철수작전이 지금 읽는 거대한 체스판과 연결됐다. 이를 통해 전 지구적 패권의 향방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극동 아시아의 작은 반도에 사는 사람으로서 세계 정세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게 중장기적으로 나 혹은 내 가족 더 나아가서는 내 후세에 가장 큰 영향을 줄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소중한 계기가 계기가 됐다.
거대한 체스판은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얼른 다 읽고 서평을 쓸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중심으로 글을 쓸 수 있게 주제를 제시해준 태윤님께 감사드린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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