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이 될 인가?

내가 왕이 될 인가?

손바닥에 王을 새기는 것과, 신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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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2021년 10월, 아직 대통령이 아니던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손바닥에 ‘王‘자를 쓴 채로 TV 토론회에 출연해 이슈가 됐다. 무속이나 역술 관점에서 손바닥에 ‘王’자를 쓰는 것은 가기 싫은 자리에 가야 할 때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반대편에 있는 정치인에겐 매우 좋은 소재가 됐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국민을 위해 가장 봉사해야 할 1번 일꾼인 대통령을 왕으로 생각하는 사람. 주술에 의거한 것인지, '왕'자를 써서 부적처럼 들고나오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도 부적 선거, 주술 대선이라는 자극적인 워딩을 남발하며 포화를 퍼부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누리꾼 사이에 다양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王‘자를 쓴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는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손바닥의 ‘王’자가 그 힘을 발휘한 것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일은 종종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손바닥에 ‘王’자를 써넣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MBTI 얘기만 나오면 별자리와 혈액형을 더 믿는다는 농을 칠 정도로 냉소적인 태도를 견지하던 내게는, 윤석열 후보의 ‘王’자 해프닝도 그저 우연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에 왕자를 썼다고 대통령이 된다고? 전 행성들이 십자형태를 만든다는 그랜드 크로스가 지구를 멸망시킨다는 얘기랑 다를 게 뭐지?

그러던 중 ‘믿을 수 있는 점술 서비스 천명’에서 오마카세 글쓰기 클럽에 재미난 미션을 의뢰했다. 점술을 믿지 않으시는 멤버들이 천명 서비스를 경험해 보고 생기는 심경 변화를 콘텐츠로 만들면 어떻겠냐는 요지였다. 본인 스스로 역술이나 무속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해 본 적도 없고, 유사 서비스를 이용해본 적도 없었기에 호기심도 일었고, 클럼 멤버들에게 의중을 물어보니 반응도 적극적이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미션을 의뢰한 천명에서도 만족할 콘텐츠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흔쾌히 진행하게 됐다.

천명에서는 타로, 사주, 그리고 신점 이렇게 3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중 신점이 가장 강력한(?) 콘텐츠라고 이걸 경험하는 것이 가장 임팩트가 클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이미 콜드리딩이나 바넘 효과 같은 심리학 현상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어떤 얘길 들어도 충격받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혹시나 좋지 않은 얘길 들으면 조심하면 되니 나쁠것 없고, 좋은 얘길 들으면 최소한 기분은 좋아질 테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나는 천명 서비스 내에서는 꽤 인지도가 있고, 부킹도 2주나 밀려있는 모 점술 선생님에게 신점을 보러 가게 됐다.

결과부터 말하면, 이번 신점이 크게 충격받을 만큼 놀라운 경험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부정적인 얘기나 놀라울 정도로 좋은 얘기를 들은 것도 아니지만, 상담 내용을 떠나서 신점을 봤다는 새로운 경험 그 자체가 그냥 신기한 경험이었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선생님이 나처럼 돈 욕심이 많은 사람 오랜만에 봤다고 하신 것, “아니 돈 욕심만 있음 어떻게 해요? 돈 벌 능력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니 돈 벌 능력도 있단다. 2년 뒤부터 풀리기 시작해서 30대보단 40대가 좋을거고 40대보단 50대가 좋을 거고 말년까지 쭉 좋을 거라는 덕담을 해주셨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우주 관련 다큐멘터리 중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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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점을 보면서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고 이미 모두 결정돼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테넷'과 '인터스텔라' 모두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식의 결정론적 세계관과 연관 있는데, 노력과 상관없는 결과가 주는 무력감 때문에 이런 사고 자체를 지양하는 편이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번 신점을 통해 느끼게 됐다.

물론 돈은 예전에도 많이 벌고 싶었고, 지금도 그러고 싶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내가 하면 당연히 잘 될 거라는 생각으로 덤벼들 것이다. 이건 신점 전이나 후나 크게 달라질 부분은 아니다. 다만 날 모르는 사람도 내가 잘될 거라고 얘기해주는데, 날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나 스스로는 더더욱 확신을 가지고 모든 일에 정진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은 이렇게 신점이라는 매개체를 돌고 돌아 자아 성찰로 돌아오게 되리라는 것도 예상했었다. 이거 봐,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 연결돼있고 이미 결정돼 있다니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