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2010년대의 가장 역사적인 사건을 골라보자면, 단연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을 꼽겠다. 대결 당시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바둑이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한 보드게임이기 때문에 AI가 인간을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망했다. 영국의 천재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가 개발한 알파고는 2016년, 지난 수십 년간 인간 바둑계의 최강으로 군림한 이세돌에게 도전했다.
바둑의 초기 전투에서는 체스의 퀸즈 겜빗이나 시실리안 디펜스와 같은 정석 포석 방법들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포석이 나중에 좋은 영향을 줄지 나쁜 영향을 줄지 그 당시엔 알 방법이 없다. 바둑을 두다 보면 창의적인 단 하나의 수로 전체 판세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세돌과의 대국 초기 알파고가 둔 몇몇 수는 바둑 전문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수였다. 하지만 그렇게 놓인 ‘이상한 수’들이 결국 알파고를 4:1 최종 승리로 이끌었다. 이세돌에게 알파고를 이긴 인간 바둑기사라는 타이틀을 안긴 제4국의 78수 또한 해설자들이 이해하지 못한 ‘이상한 수’였다.(그리고 후에 ‘신의 한 수’로 불리게 된다)
인공지능의 충격적인 승리 뒤에 알파고 같은 프로그램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기묘한 수를 개발했다. 프로기사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실전에서 효과적이라는 것이 증명되면서 이제는 바둑을 배우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 인공지능의 기보를 사람이 배우고 이를 기반으로 전략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바둑의 수준이 상당히 올라갔다고 평한다.
나는 흩어진 바둑돌이 연결되어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을 스티브 잡스의 명연설 Connecting the dots과 결부 짓고 싶다. 2005년 스탠퍼드의 졸업 연설에서 그는 자신이 대학을 중퇴하고, 캘리그래피 수업을 듣곤 했던 각각의 점들이 어떻게 미래에 하나로 이어진 점선이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 두는 바둑의 포석이 나중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당시에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어떤 행동이 좋을지 나쁠지 미래를 봐서는 판단할 수 없다. 오직 행동 이후에 과거를 바라봄으로써만 흩어진 점을 이을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강조했듯, 우리가 둔 포석들이 언젠가 어떻게든 연결된다고 믿고 행동해야 한다. 올바른 방향과 열정을 가졌다면, 계획 없이 흩뿌려둔 포석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언제든 하나의 점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알파고의 새로운 수가 바둑 세계를 완전히 뒤바꾼 것처럼, 우리가 찍는 점들도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의도적으로 행동한다면 의도하지 않은 반가운 결과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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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11월 7일 추가
최근 신종목을 만나보세요.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분들을 만나고 있는데 나중에 돌아봤을 때 이 활동이 어떻게 점선이 되어 이어질지 매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