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12월 25일, 치앙마이에서 돌아온 뒤 2주 정도 몸 상태가 안 좋았다. 겨울에 동남아 다녀오면 으례 겪곤 하는 여독이겠거니 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귀국 직후 일주일 동안 낮에는 몸살 걸린 것처럼 오한에 몸서리치고, 밤에는 38도에 달하는 고열로 잠을 설쳤다. 체중도 빠졌다. 인후통이 없는것만 빼고는 8월 코로나에 걸렸을 때 증상이랑 비슷해서 자가검진 키트를 해봤으나 음성이 나왔다. 그냥 감기인가 하고 타이레놀로 며칠을 버텨봤다.
딱히 차도가 없어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코로나 키트와 비급여 독감 검사까지 해봤으나 모두 음성. 의사 양반은 여행으로 인한 일시적 컨디션 저하가 원인일 거라면서, 비타민 주사를 권했다. 개인적으로 비타민 주사 효용에 부정적인데, 속는 셈 치고 제일 비싼 10만 원짜리로 하나 맞았다. 비타민 주사 복용(?) 직후 몸 상태가 호전되는 것 같았으나, 그 효과는 딱 하루를 갔다. 그렇지만 천천히 체온 조절 능력과 수면 컨디션 모두 나아지기 시작했다.
코로나도 아니고, 독감도 아닌데 왜 아픈 걸까 하고 아픈 동안 태국 풍토병들을 좀 찾아봤는데 “뇌 먹는 아메바”라는 치사율 97%의 병이 국내에서도 보고됐다는 기사를 찾게 됐다. 강가나 호수 등의 민물을 통해 아메바가 인간에게 전염된다고 하는데, 비강을 통해 뇌로 전이돼 뇌를 파먹게 되고 급속도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뇌 먹는 아메바에 전염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주요 증상 중 하나가 언어능력 소실이라던데 최근 중언부언한 것들이 떠오르면서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내일 죽는다면? 그냥 그렇게 끝인가? 살기 위해 뭘 할 수 있지? 죽는 게 확정이라면 뭘 해야 덜 후회할까? 잠을 설치는 동안 죽음과 관련된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의 꼬리를 물었고, 생각이 한없이 팽창해 그 흐름을 더 이상 추적할 수 없을 때 잠에 빠져들곤 했다.
매일 우리의 삶은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놀랍게도 죽음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내일 죽는다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만 봐도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최근 의사와 결혼을 한 사돈의 팔촌쯤 되는 간호사라는 분의 씀씀이가 가족 모임에서 언급된 적이 있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한 지 5년이 넘는데, 죽음을 하도 많이 목도하다 보니 미래를 위한 저축보다는 현재의 행복을 위한 소비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나와는 다르게 이분은 죽음에 대한 가치관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현재 몸 상태는 정상 컨디션에 가깝게 회복됐지만, 죽음에 대한 가치관이 확실하지 않다면 나는 죽어있는 사람이 아닐까? “죽음에 대한 가치관 확립”을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이슈로 백로그에 저장해두기로 했다. 불편하지만 꾸준히 생각해봐야 할 주제다. 급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빠른 시일내에는 다가오지 않길 빈다.
이 에세이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환기하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한다.
Fin,